200516 그라운디드
블루, 타이거, 회색, 시선, 감시, 현실과 가상의 경계, 진실, 죄의식, 포니, 분홍색 말. 벙커. 모래.
- 배우 차지연. 차언니 잘하는거야 알고 있는 사실인데 진짜 너무 잘한다. 회색 무대에 의자 하나, 그리고 혼자 서 있는 배우. 모노극임에도 모든 등장 인물들이 다 보였다. 차소령, 에릭, 샘. 그 곳엔 높은 하늘도 있었고 회색컨테이너도 있었으며 가짜 피라미드도 보였다. 극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순 있어도 배우에 대한 호불호는 없을거란 후기가 정말 딱이다. 눈빛 하나로 모든 서사를 말하는 사람. 배우. 차지연. 차언니 진짜 대단하고 멋진 새럼이야8ㅁ8 일엃 보러가야지.
1. 초반 <블루 안에 차소령>
땀과 배짱으로 이루어진 사람. 타이거를 타고 파란 하늘, 블루를 향해 날던 비행사. 하늘을 유영하다 목표물에 폭탄을 투하하고 폭발소리를 뒤로한채 다시 블루 속으로 사라지는 파일럿. 비행복은 또 다른 '나'. 그렇게 블루 속을 헤엄치던 소령이 에릭을 만난다. 뭣모르고 다가왔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면 도망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에릭은 자길 '멋진 사람' 이라 했다. 에릭은 소령에게 끌렸고, 소령도 에릭에게 끌렸다. 둘은 3일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스크린을 통해 만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찾아온 생명. 차소령은 뱃속의 아이에게 블루를 맘껏 느끼게 해준다. 만삭의 배를 끌어안고 에릭을 만나러 간다. 비행복 입은 만삭의 파일럿. 에릭은 그 순간을 사진으로 영원히 남기고 샘이 태어난다. 그리고 차소령은 다시는 블루를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 아니 그니까 왜 콘돔을 안 써 왜 콘돔을 쓰라고 콘돔을!!!!!!!!!!!!!!!!!!!!!!!!!!!!!!!! 피임을 해!!!!!!!!!!!!!!!!!!!!!
2. 중반 <새로운 전쟁터, 새로운 일상>
복귀한 차소령은 창공이 아닌 땅 위에서 비행을 한다. 손에는 새로운 운전대, 조이스틱을 잡고 새로운 전쟁터로 나간다. 회색 스크린 너머의 전쟁터. 나는 여기 있고 내 비행기는 사막에 있다. 내 비행기는 사막을 보고 있고 난 스크린을 봐. 열두시간 동안 회색 스크린 너머 사막을 보다 한발자국 나오면 눈 앞에 진짜 사막이 있다. 내가 보는게 회색의 사막일까 아니면 달빛을 받아 빛나는 사막일까. 회색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데 점점 시간이 오래걸리기 시작한다. 열두시간의 전쟁, 열두시간의 일상. 두 세계의 경계는 점차 흐릿해져가고 돌아오는 사막길에 죄책감과 회색을 하나 둘 씩 묻고 온다. 세계는 점점 회색빛이 되어간다.
- 차라리 차소령이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시대의 변화에 자연스레 휩쓸려갔으면 좀 더 다르게 느껴졌을까? 다가오는 새시대에 점차 적응을 하는것과 복귀하고 보니 세상이 달라져 있는건 다른 이야기니까. 그곳에 계속 있었다면 다른 쓰임이 있는 곳으로 갈 수 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러해도 결말은 같았을까.
- 나는 이세계의 신이다. 예언자를 지켜보는 신. 자신이 누군가를 지켜볼 수 있는 건 누군가 자신도 지켜볼 수 있다. 쇼핑몰의 CCTV 카메라 앞에서 자기는 죄가 없다고 외치는건 소령의 죄책감에서 나온 행동이겠지. 창공에서 일을할 땐 튀어나간 파편은 보이지 않았거든. 하지만 회색스크린에선 잘리고 튀어나가는 파편들을 직접 목격하니까. 열두시간 느린 곳에서 손가락 까딱하면 1분 20초 뒤에 사람을 죽일 수 있어. 그 죄책감과 감시당한다는 불안감.
- 열두시간 노동이라니ㅠㅠㅠㅠㅠ 화장실도 못가고 열두시간동안 앉아있는건 노동법 위반 아니냐ㅠ
3. 후반 <회색 스크린에 갇힌 차소령>
에릭은 그 비행복 좀 벗으라고 소리치고 샘은 계속 회색으로 보인다. 에릭은 의식을 치루라 했다. 도박장에서 손뼉을 치고 두 손을 쫙 피면 자긴 오늘 일을 끝낸거라 했다. 일종의 자기와의 약속. 이 의식을 치루면 도박장에서 빠져나와 일상 속의 에릭이 된다. 차소령은 그걸 따라한다. 눈을 감고 박수를 친다. 두 손을 펴서 아래위로 뒤집고 천천히 눈을 뜬다.
여전히 회색이다.
자신과 똑같은 차를 끄는 2인자를 죽이기 위해, 다음 교대자가 아닌 자신의 손에서 마무리 짓기 위해 눈에 불을켜고 회색스크린을 쳐다본다. 그 차는 어느 집을 향하고 집에선 한 아이가 나온다. 누군가를 많이 닮은, 한 여자 아이. 2인자는 여자아이를 꼭 끌어안고 헤드셋에서는 발포하란 명령이 들린다. 하얗게 질린 손이 떨린다. 헤드셋에선 계속 발포하란 목소리가 나오지만 버튼을 누를 수 없다. 옆에 있는 아이는, 아이는, 샘이었다. 안 돼, 쏠 수 없어. 안 돼. 샘!!!! 도망쳐 샘!!!!!!!!! 샘을 애타게 불러도 스크린 속 샘은 대답이 없었다. 차라리 스크린에서 벗어나면, 보이지 않으면 쏘지 못한다. 몸을 한껏 틀어 비행기를 돌린다. 진짜 비행처럼 레버를 있는 힘껏 당겨. 무대를 감싼 세면의 벽이 움직이고 무대 뒤에서 강렬한 흰 조명을 쏴. 카메라의 시야가 틀어지면서 이제야 보이는 하늘, 블루. 그리운 나의 블루. 잊고있던 블루를 다시 만나고 차소령은 저걸 보라해. 저게 블루야, 블루라고!!!
하지만, 다시 돌아온 회색 스크린안에 2인자와 여자아이의 파편이 튀어올랐다. 샘이, 샘이 죽었다. 소령을 제외한 모두가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고 소령은 군법위반으로 지하벙커에 갇혔다.
이번엔 나지만, 다음은 너야. 신이 모두를 지켜보고 있다. 아무도 벗어날 수 없어.
- 샘이 계속 회색으로 보인다는게 복선일거라 생각해서 화면 속 아이가 진짜 샘인줄 알았다. 그만큼 나도 모르게 차소령에 완전 이입해서 봤고.. 극이 다 끝나고 곰곰히 극을 곱씹다 생각해보니 스크린 속 아이는 미국이 아닌 중동 어딘가에 있는 사막에 있는 아이인데... 진짜 샘이 거기있을리 없구나. 그걸 깨닫고 나니 차소령이 어떻게 미쳐갔을지가 더 확 와닿았다. 소령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겠지..? 내가 있는 곳이 작은 스크린인지, 비행기 안인지. 아님 진짜 사막 한 가운데인지, 핑크색 조랑말 가운데인지.
- 블루가 빨간 불빛으로 바뀌고 차소령이 그 안으로 들어가며 극이 끝난다. 빨간 불빛이 감시의 불빛일까. 우리의 일상속에 빨간불빛은 익숙하다. 여기저기 붙어있는 CCTV 감시중 표지판. 그것이 있기에 우리를 지킬 수 있지만 한편으론 우린 계속 감시당하고 산다. 또 다른 신이 보는 아래서.
- 극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다. 극이 흘러갈 수록 생각하는게 계속 바뀌었다. 극은 장면장면마다 이런저런 메세지를 우리한테 계속 던지고 있다. 여성의 경력단절, 드론폭격, 감시망 속의 우리, 현실과 가상의 구분. 여러 이야기가 나와서 끝나고 나면 내가 지금 뭘 본건가 ㅇㅁㅇ.........이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후기를 써야하는데 뭐라고 써야할지 감도 안잡혔다. 일단 차언니 채고. 차언니 만세. 차지연 만만세!!!!
처음에 임신했다했을 때, 그니까 콘돔을 썼어야지 에릭이새끼하고 파파파들거렸는데 극이 진행 될 수록.. 에릭이 벤츠더라... 다시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령을 위해 울어주고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의식도 알려주고. 남겨진 에릭과 엄마와의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샘은 어떻게 살았을까. 소령은 다시 블루를 봤을까. 그니까 왜 콘돔을 안썼느그으....(기승전콘돔)
- 자부심이었던 비행복. 에릭이 멋있다고 했던 비행복. 둘 만의 암호였던 비행복. 그리고 어떤 집착이 되버린 비행복.
- 3면을 둘러싼 회색무대는 소령이 보던 그 스크린이었을까, 아니면 갇혀있는 벙커였을까.
- 안내방송 후, 암전. 들리는 비행기 엔진소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머리 위로.
타이거와 함께했던 그 순간들.
- 소령은 비행기를 타이거 라고 했다. 마이 타이거! 타이거와 함께 중력을 거스르고 블루-를 향한다 했을 때
저 멀리 별을 보며 야간비행을 하는 피닉스가 잠깐 생각났다.
- 스크린 속에 갇힌 소령을 보며 지금의 우리도 생각이 났다. 우리도 지금 작은 네모난 화면 안에 갇혀 살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다른 사람 후기 보면서 생각해서 그냥 웃겼다. 그 후기를 뭘로 봤지요? 작은 네모난 화면으로요.
이런저런 말들이 계속 떠오르는데 모르겠다. 모르겠고 차언니 채고에요 차지연 채고. 다른건 몰라도 이 말은 할 수 있다. 차언니 채고야!!!!!!!!!!!!!!! 차 지 연 만 만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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